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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풍경을 그리기 시작하자 화랑에서 다들 미쳤다고 했죠. 그런데 이렇게 사랑받는 걸 보니, 아버지의 꿈이었던 ‘시공을 초월한 작품’이 된 것 같아 기쁩니다.”
이탈리아 현대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화가 살보(본명 살바토레 만지오네·1947∼2015)의 개인전 ‘살보, 여행’이 열리고 있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 글래드스톤 서울. 최근 이 갤러리에서 만난 살보의 딸 노르마 만지오네는 아버지를 이렇게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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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떠오른 살보의 그림들은 그렇게 탄생했다. 만지오네는 “1960∼1970년대 이탈리아의 정치적 혼란을 거치며 아버지는 개념 미술에서 구상으로 전환했고, 점차 따스하고 아름다운 자연으로 눈을 돌렸다”고 말했다. “당대에 주목받는 것보다 고흐 같은 작가로 남고 싶다고 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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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촬영된 살보. ⓒArchivio Salvo·글래드스톤 제공


사실 당시엔 개념 미술이 대세였다. 살보 역시 처음엔 당시 이탈리아의 대표 미술 사조인 아르테 포베라(가난한 예술이라는 뜻으로 소비주의를 거부하는 이탈리아의 급진적인 창작 예술 운동)의 흐름을 타고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다 KCC건설 주식
점차 구상으로 방향을 바꿨고, 선명하게 채색된 각양각색의 풍경을 본격적으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요란스럽고 복잡한 현실과 완전히 대비되는 세계 속으로 푹 빠져든 것이다. 그것은 실제 자신이 여행한 사실적 장소이기에 직관적이면서도, 그 장소가 끼친 영향이나 정서가 깃들어 은유적이기도 하다. 또, 때론 가보고 싶은 풍경을 그려내 추상적인 느낌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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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보 풍경화의 독특하고 다채로운 분위기는 그가 여행지에서 세상을 감각하고 돌아와 사유하고 재해석하는 과정을 거친 후 그렸기 때문이다. 만지오네는 “아버지는 여행하는 도중에 절대 그림을 그리지 않고 다녀온 뒤 그림을 그렸다”며 “그 그림엔 아버지가 과거에 봤던 풍경, 기억 속 풍경과 지금 눈앞의 풍경이 모두 한꺼번에 담겨 있는 듯하다”고 설명했다SK C&C 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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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마 만지오네 살보재단 공동설립자가 아버지 살보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Archivio Salvo·글래드스톤 제공


글래드스톤은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40여 년 역사의 글로벌 갤러리로, 이번 전시는 살보재단과 협업해 선보이는 국내 첫 살보 개인전이다. 특히, 살보의 아내와 딸이 주도적으로 기획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출품된 13점은 1988년부터 2015년 작고 직전까지 폭넓은 시기를 아우른다. 그 속엔 이탈리아의 유명한 여름 휴가지도 있고, 독일 슈투트가르트,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이집트 등 살보가 혼자 혹은 가족들과 머물렀던 여러 장소들이 담겨있다. 가 보고 싶었으나, 끝내 가지 못한 장소도 그림으로 남았는데, 바로, 우즈베키스탄의 도시 키바를 모티브로 한 작품 ‘키바’(2015)다. 전시에선 살보 하면 떠오르는 첨탑 건물, 즉 ‘오토마니아’ 연작도 만나볼 수 있다. 이는 작가가 만들어낸 신조어로, 이슬람 모스크의 첨탑 등의 건축물을 다룬 작업들을 일컫는다.
눈썰미 좋은 감상자라면, 살보의 그림에 검정이 없다는 걸 금세 발견할 것이다. 살보는 그림자조차 검게 칠하지 않는 걸로 유명했는데, 예컨대 나무 그림자는 푸른색이 깃든 어두운 컬러로, 꽃 그림자는 그 꽃의 색을 품은 어둠으로 처리했다. 만지오네는 “아버지는 그림자를 그릴 때조차 절대 검은색을 사용하지 않았다. 사실 자연엔 완전한 검정은 없지 않나”고 반문했다. 이어, “그림자를 통해 자연이 주는 마법 같은 순간을 표현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1999년 작 ‘10월(Ottobre)’. ⓒArchivio Salvo·글래드스톤 제공


시대의 혼돈 속에서 숭고한 자연의 빛과 오랜 건축물의 형태에 몰입하며 살보는 어떤 이상향을 꿈꿨을까. 그와 여행하는 듯, 그의 마음속을 염탐하는 듯, 살보의 작품들을 눈과 마음에 담다 보면, 어느새 작가의 기억과 현실, 상상의 상호 작용 속으로 우리도 빠져들게 된다.
이때, 그의 작품이 크게 몇 가지 주제로 나뉜다는 걸 알고 보면 훨씬 이해가 빠르다. 살보의 작품들은 첨탑(minaret) 등의 건축물을 다룬 ‘오토마니아(Ottomania)’, 고대 기둥과 고고학 유적지를 다룬 ‘카프리치(Capprici)’, 사계절의 산고개를 묘사한 ‘밸리(Valli)’, 지중해의 풍경을 담은 ‘메디테라네이(Mediterranei)’ 등으로 나뉜다.



생애 마지막 무렵인 2015년에 그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Bosnia Erzegovina)’. ⓒArchivio Salvo·글래드스톤 제공


세상을 떠난 뒤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살보는 1976년과 1988년 베니스비엔날레에 참여했으며, 스위스 루체른 미술관과 프랑스 님 현대미술관, 토리노 근현대미술관, 로마 현대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살보, 여행’은 내달 12일까지 계속된다.
박동미 기자